두보
杜甫
712–770 · 문언문(한문) · 동아시아
안녹산의 난에 휩쓸린 백성의 고통을 자기 처지와 함께 시에 적어, 시로 시대를 기록한다는 '시사(詩史)'의 자리를 만들었다. 징집·굶주림·피난 같은 산문적 사실은 「석호리」가 속한 삼리삼별처럼 고체시와 악부의 형식으로 적고, 율시에서는 대구와 성률의 규칙을 지킨 채 같은 시대의 무게를 여덟 구 안에 접어 두어, 두 형식을 오가며 증언의 밀도를 높였다. 송대 이후 그는 시를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거치는 표준 교본이 되었고, 조선에서는 『두시언해』라는 관찬 번역의 대상이 되었다.
입문 순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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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망757
여덟 구 마흔 자로 짧고, 「나라는 부서졌어도 산하는 남았다」는 첫 구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전란과 개인이 겹치는 두보의 자리를 가장 적은 분량으로 보여준다.
안녹산의 군에 함락된 장안에 억류되어 쓴 오언율시. 「나라는 부서졌어도 산하는 남았다」는 첫 구가 전란시의 대표 문장이 되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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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리759
석호촌의 밤에 관리가 노인의 집에서 사람을 징발해 가는 광경을 목격자의 시점으로 적은 시. 「삼리삼별」 연작의 한 편으로, 시가 사회적 사실을 기록하는 방식을 가장 건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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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767
기주 시절 중양절에 쓴 칠언율시. 여덟 구가 모두 대구로 짜여 율시 형식의 한 극점으로 평가되며, 늙음과 병과 유랑이 풍경 묘사 안에 접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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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흥팔수766
기주에서 장안을 그리며 쓴 여덟 수의 칠언율시 연작. 전고와 기억이 겹쳐 한 수씩으로는 풀리지 않고 여덟 수가 함께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두보 만년 형식의 정점이다.
주의 — 「추흥팔수」부터 들어가면 전고와 기주 시절의 정황에 막힌다. 사건이 표면에 드러난 짧은 시부터 읽고 만년의 연작으로 올라가는 편이 낫다.
난도 4/5 — 율시의 대구는 한 글자씩 짝을 맞춰 압축돼 있어 번역에서 가장 많이 손실되고, 「추흥팔수」 같은 연작은 안사의 난 전후의 정황과 전고를 함께 알아야 여덟 수가 하나의 구조로 묶인다.
이어지는 한 사람
- ·이백대화
두 사람은 744년 낙양에서 만나 한동안 함께 유람했고, 두보는 「이백에게 부침」·「봄날 이백을 생각하며」·「꿈에 이백을 보다」 두 수 등 여러 편을 이백에게 바쳤다. 문헌 기록 · 출처 2건
나머지 관계 1 — 선이 그어진 이유
- ·마쓰오 바쇼영향
바쇼는 『오쿠노 호소미치』의 히라이즈미 대목에서 「춘망」의 첫 구를 '国破れて山河あり'로 옮기고 뒷구는 '城春にして草青みたり'로 고쳐 적은 뒤, 그 폐허 위에서 자기 홋쿠를 이어 붙인다. 문헌 기록 · 출처 1건
출처 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