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 프랑스어 · 서유럽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소설과 희곡으로 옮겨 철학을 이야기의 형태로 유통시켰고, 작가가 제도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며 노벨상을 사양했다. 『구토』의 마로니에 뿌리 앞에서 밀려드는 구역질, 『닫힌 방』의 사라지지 않는 타인의 시선처럼 개념을 한 장면으로 응축하는 서술을 만들었고, 『레 탕 모데른』을 창간해 그 개념을 잡지·논쟁·성명이라는 상설 형식으로 옮겼다. 전후 20여 년간 유럽에서 문학의 '참여'는 그가 규정한 뜻으로 쓰였다.
입문 순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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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방1944
5장으로 된 단막극이라 하루 저녁에 끝나고, 시선·자유·타인이라는 그의 주제가 무대 장치 없이 갇힌 세 인물의 대사로 드러난다.
출구 없는 방에 갇힌 세 사람의 단막극으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이 관념이 아니라 무대 상황 자체에서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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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1938
로캉탱의 일기 형식으로 사물의 우연성이 의식에 밀려드는 경험을 서술해, 존재의 무근거함을 개념이 아니라 지각으로 옮겨 놓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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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
1945년 강연을 옮긴 얇은 책으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전문 독자 바깥으로 내보내 실존주의를 전후 유럽의 공용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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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1964
유년의 독서와 글쓰기를 스스로 해부한 자서전. 같은 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작가가 문학이라는 자기 신앙을 정산하는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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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무1943
즉자·대자·무·자기기만이라는 개념으로 의식과 자유를 기술한 현상학적 존재론. 그의 소설과 희곡이 장면으로 옮기는 장치들이 모두 여기서 나온다.
주의 — 『존재와 무』부터 읽으면 현상학 용어 때문에 초반에서 멈추기 쉽다. 희곡과 소설로 개념의 장면을 먼저 겪은 뒤에 여는 편이 낫다.
난도 4/5 — 소설과 희곡은 읽히지만 『존재와 무』는 후설·하이데거의 용어를 전제한 현상학 논문이고, 소설의 장면들도 즉자·대자·자기기만 같은 개념의 번역이라 개념 없이 읽으면 사건이 헛돈다.
이어지는 한 사람
- ·시몬 드 보부아르대화
1929년 이후 평생의 지적 동반 관계로, 두 사람은 1945년 잡지 『레 탕 모데른』을 함께 만들었다. 문헌 기록 · 출처 1건
나머지 관계 5 — 선이 그어진 이유
- ·프란츠 파농대화
사르트르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1961)의 서문을 썼고, 두 사람은 그해 로마에서 만나 밤을 새우며 논쟁했다 — 보부아르가 『상황의 힘』에 그 만남을 기록했다. 파농은 그 이전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사르트르의 「검은 오르페우스」를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문헌 기록 · 출처 2건
- ·알베르 카뮈대화
사르트르는 「『이방인』 해설」(1943)로 카뮈를 읽어냈고, 1952년 『레 탕 모데른』 지면에서 『반항하는 인간』(1951)을 둘러싼 공개 논쟁 끝에 절교했다. 전후 프랑스 지식인의 분기점으로 남은 교류다. 문헌 기록 · 출처 2건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영향
『사르트르와 카뮈 사이』(1981)에서 자신의 초기 문학관이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 위에 세워졌음을 서술하고, 그로부터 멀어진 경위를 밝혔다. 문헌 기록 · 출처 1건
- ·귀스타브 플로베르대비
「『레 탕 모데른』 창간사」(1945, 『Situations II』 수록)에서 사르트르는 플로베르와 공쿠르를 코뮌 탄압의 책임자로 지목하며 '막기 위해 한 줄도 쓰지 않았다'고 썼고, 뒤에 『집안의 백치』(1971–72) 세 권을 그 플로베르 한 사람에게 바쳤다. 예술을 위해 물러난 작가와 참여하는 작가라는 두 상은 사르트르 연구가 한 쌍으로 다루는 대립항이다. 학계 통설 · 출처 2건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영향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에서 '그의 뒤에, 헤밍웨이의 뒤에 우리가 어떻게 묘사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생텍쥐페리의 이름을 헤밍웨이와 같은 자리에 놓았다. 문헌으로 남은 것은 같은 『상황 II』 안의 몇 문장에 그치는 공개적 인정이고, 서술 방법이 어떻게 옮겨 갔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은 아니다. 문헌 기록 · 출처 1건
같은 자리, 같은 때 — 10명
출처 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