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책

산도르 페퇴피

Petőfi Sándor

1823–1849 · 헝가리어 · 동유럽

구어체 헝가리어로 쓴 시를 광장의 낭독물로 만들어, 1848년 3월 15일 페슈트에서 「민족의 노래」가 봉기 첫날의 일부가 되게 했다. 민담의 운율과 어휘를 그대로 쓴 「용사 야노시」는 이야기 시의 재료를 궁정과 고전에서 농촌의 말로 옮겨 놓았다. 스물여섯에 전장에서 사라진 그의 생애는 이후 헝가리 시에서 시인과 정치적 행위를 같은 것으로 보는 상(像)의 기준이 되었다.

여기서 읽기 시작

입문 순서 4

  1. 민족의 노래1848

    짧고 명령형이며 1848년 3월 15일이라는 사건과 붙어 있어, 시가 어떻게 사건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한 편으로 확인할 수 있다.

    1848년 3월 15일 페슈트에서 낭독된 시. '일어나라 헝가리인이여'라는 명령형으로 시작해 연마다 같은 맹세 구절이 되돌아오며, 인쇄물이자 구호로 동시에 유통되었다.

  2. 9월 말에1847

    결혼 직후 콜토에서 쓴 시. 창밖의 늦여름과 자기 죽음 이후의 시간을 한 시선 안에 겹쳐 놓아, 정치시로만 알려진 그의 다른 면을 보여 준다.

  3. 용사 야노시1845

    민담의 어휘와 율격을 그대로 쓴 27장의 이야기 시. 양치기 소년이 프랑스 왕과 거인의 나라를 지나 마지막에 요정의 나라에 이르러 그곳의 왕이 되는 구조가 이후 헝가리의 아동물·무대 각색이 반복해 돌아오는 원천이 되었다.

  4. 사도1848

    1848년에 쓰였고 1851년 압수된 에미흐 판에 처음 실린 뒤 1862년 뮐레르 줄러 연감에까지도 쓸 수 없는 본문으로 실렸던 장시. 온전한 본문은 1874년 아테네움 시집에 실렸으며, 혁명가의 생애를 끝까지 따라가며 「민족의 노래」의 낙관이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기록한다.

주의 — 「민족의 노래」에서 멈추면 그를 구호 시인으로만 남기게 된다. 「9월 말에」까지 읽어야 같은 사람이 쓴 다른 목소리가 보인다.

난도 2/5 — 문장은 구어체라 곧바로 읽히지만, 1848년 헝가리의 정세와 민담 어휘가 배경으로 깔려 있어 각주 없이는 고유명사와 정치적 지시가 비어 보인다.

이어지는 한 사람

나머지 관계 1 — 선이 그어진 이유
같은 자리, 같은 때 — 2명

이웃한 자리 — 중부유럽·러시아·북유럽

출처 3건